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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목소리 제9화 학교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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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학교의 그림자 마당에서의 소동이 있은 후, 마을을 뒤덮었던 안개는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하지만 명화의 손바닥에 남은 은색 방울의 통증은 가라앉지 않았다. 그날 새벽, 할머니 옥분의 청수에 젖어 비틀거리며 돌아가던 준의 뒷모습이 명화의 망막에 낙인처럼 찍혔다. 소년의 등에 매달려 있던 그 수많은 창백한 손들. 준은 정말로 그것들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너무나 익숙해져 버린 것일까. 월요일 아침, 학교로 향하는 명화의 발걸음은 평소보다 무거웠다. 운동장에 들어서자마자 눅눅한 물비린내가 코끝을 스쳤다. 비가 온 것도 아닌데, 교문 앞 아스팔트 위에는 누군가 젖은 발로 걸어간 듯한 축축한 발자국들이 교실 건물 안쪽으로 길게 이어져 있었다. 교실 문을 열었을 때, 명화가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준의 자리였다. 하지만 준은 오지 않았다. 책상 위에는 주말 동안 쌓인 미세한 먼지만이 뽀얗게 내려앉아 있었고, 그 주변으로만 공기가 웅웅거리며 낮게 진동하고 있었다. “야, 이준 오늘 안 왔냐?” 뒷자리에 앉은 반 아이들이 수군거렸다. “걔 어제부터 열이 펄펄 나서 못 일어난대.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서울 애들이 시골 내려오면 물갈이하느라 고생한다더라.” 아이들의 가벼운 농담 섞인 대화가 명화의 귀에는 날카로운 금속음처럼 들렸다. 물갈이. 그것은 단순한 수질의 문제가 아니었다. 준이 품고 온 그 지독한 ‘그릇’ 안에 이 마을의 오래된 원혼들이 차오르기 시작했다는 신호였다. 명화는 자리에 앉아 가방을 움켜쥐었다. 그때였다. 교실 앞문이 열리며 담임 선생님이 들어왔다. 평소와 다름없는 단정한 차림에 인자한 미소였다. 하지만 선생님이 교단에 서서 출석부를 펼치는 순간, 명화의 손바닥이 타들어 가는 듯 뜨거워졌다. 딸랑—. 명화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환청 같은 방울 소리가 울려 퍼졌다. 명화의 시선은 선생님의 얼굴이 아닌, 그 너머 칠판 위로 향했다. 선생님의 등 뒤, 마치 투명한 그림자처럼 달라붙어 있는 형체가 보였다. 그것은 준의 뒤에 매달려 있던 그 손들 중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