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목소리를 듣는 아이 4화 정순이

  4화 정순이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번지기 시작한 해괴한 소문은 복순이네 엄마의 입을 통해 명화의 귀에 닿았다.
복순이네는 명화의 집에서 두 집 건너 살았는데, 그녀의 말투는 마치 비가 새는 지붕에서 끊임없이 떨어지는 물방울 같았다. 특별한 악의는 없었으나, 결코 멈추는 법이 없었고 무엇보다 비밀을 담아두지 못했다.

"그 미장원 미숙이 말이야." 복순이네 엄마가 마을 공동 우물가에서 누군가에게 속삭였다. 명화가 빈 물통을 들고 지나가고 있었지만, 그녀는 목소리를 낮출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밤마다 자정만 넘기면 물가에 나간대. 우리 남편이 벌써 세 번이나 봤다니까.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장대처럼 꼿꼿이 서서 물만 보고 있더라는 거야."

명화는 발걸음을 늦췄지만 멈추지는 않았다. "아무 말도 안 한대요? 기도라도 하는 건가?" 곁에 있던 이웃이 물었다. "말은 무슨. 숨소리도 안 들릴 정도로 가만히 서 있대. 마치 물속에서 뭐가, 혹은 누군가가 튀어나오기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말이야."

명화는 물을 채우지 못한 빈 양동이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텅 빈 양동이의 무게가 오히려 물이 가득 찼을 때보다 더 무겁게 느껴졌다. 마당 한가운데에 양동이를 내려놓자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툇마루에는 할머니 옥분이 앉아 콩을 까고 있었다. 할머니는 명화가 온 것을 알면서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콩껍질이 갈라지는 건조한 소리만이 마당의 정적을 메웠다.

명화는 할머니 옆에 나란히 앉았다. "할머니. 마을 사람들이 물가에 나가는 아주머니 이야기를 해요." 서걱거리던 손길이 아주 잠깐 멈췄다. 세상이 숨을 죽인 듯한 찰나의 정적 후, 리듬이 다시 이어졌다. "들었다." 할머니가 짧게 답했다. "왜 가는 걸까요?"

할머니는 까던 콩을 무릎 위에 내려놓고 마당의 감나무 너머를 응시했다. 오후의 햇살은 멍든 오렌지빛으로 변해 있었고, 마당 위로 해골처럼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마음속에 도저히 내려놓을 수 없는 짐을 가졌을 때 물을 찾기도 하지. 물은 결코 채워지지 않는 무덤과 같으니까."

명화는 할머니의 얼굴을 관찰했다. "그 아주머니도 무거운 걸 지고 있나요?" 할머니는 다시 콩을 집어 들었다.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귀신을 업고 사는 법이다. 그건 질문이 될 수 없어." "그럼 진짜 질문은 뭔데요?" 할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무거운 비밀을 가둔 마스크 같은 표정으로 묵묵히 콩껍질을 깔 뿐이었다.


그날 밤, 꿈이 찾아왔다.

공기는 숨쉬기 힘들 정도로 탁했고, 빛은 근원을 알 수 없이 모호했다. 명화는 마당에 서 있었지만 그곳은 집이 아니었다. 감나무는 잎사귀 하나 없이 앙상했고, 가지들은 물에 빠진 사람의 절박한 손가락처럼 별 하나 없는 하늘을 향해 뻗어 있었다.

마당 끝에 정순이가 서 있었다.

신당에서 본 사진 속 모습 그대로였다. 무엇보다 그 눈—산 사람은 들을 수 없는 주파수에 고정된 듯, 안쪽을 향해 있는 그 눈빛이 정순임을 증명했다. 정순은 너무 많이 빨아 나방의 날개처럼 얇아진, 빛바랜 흰색 한복을 입고 있었다.

그녀는 말하지 않았다. 명화가 떨리는 발걸음을 한 걸음 내디뎠지만, 정순은 물러나지도 다가오지도 않았다. 그저 차가운 물살 같은 시선으로 명화를 바라볼 뿐이었다. "네가 정순이야?" 명화가 물었다.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마른 바람이 스치며 서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정순이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도움을 요청하거나 잡으려는 손짓이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손바닥에 놓인 아주 작고 연약한 것을 보여주려는 듯, 평평하게 편 손바닥을 내밀었다. 하지만 그 손 위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명화가 그 빈 손바닥을 확인하려 손을 뻗어 정순의 손가락에 닿으려는 찰나—

댕—.

맑고 날카로운 방울 소리 하나가 명화의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어둠 속에서 번쩍 눈을 떴다. 허공을 향해 뻗어 있던 팔이 힘없이 떨어졌다.

손바닥이 차가웠다. 단순히 밤바람 때문이 아니었다. 한겨울 얼어붙은 놋그릇을 만진 것처럼, 혹은 차가운 시냇물 속에 담가두었던 돌처럼 뼛속까지 스며드는 한기였다. 명화는 보이지 않는 작은 무게가 여전히 느껴지는 자신의 손바닥을 펴고 어둠 속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하늘이 아직 검게 물든 새벽, 할머니는 이미 깨어 있었다.

신당 안에서 할머니는 명상을 하듯 정좌하고 있었다. 가늘게 떨리는 기름등잔의 불꽃이 할머니의 얼굴 위로 깊은 그림자를 만들어내며, 그녀를 시대 사이에 낀 존재처럼 보이게 했다. 명화는 말없이 할머니 맞은편에 앉았다. 한참 뒤 할머니가 눈을 떴다.

"왔었구나." 할머니의 목소리는 확신이었다. "무언가를 보여주려고 했어요. 그런데 손바닥이 비어 있었어요." 명화가 답했다. 할머니는 등잔불을 응시하며 나직하게 물었다. "그 아이의 손이 정말 비어 있었느냐? 아니면 네가 아직 그 위에 놓인 것을 볼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이냐?"

명화는 꿈속의 장면을 되새겼다. 정순의 그 조심스럽고 간절했던 손짓. 분명 무언가 보이지 않는 것이 거기 존재하고 있었다. "할머니... 정순이는 어떻게 죽었나요?"

등잔불이 미세한 바람에 크게 휘청였다. 할머니의 손이 무릎 위에서 가늘게 떨렸다. "물이다."

단 한 마디가 방 안의 침묵 속으로 무겁게 떨어졌다. 명화는 매일 밤 강가에 서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미숙 아주머니를 떠올렸다. "강가에 나가는 아주머니도... 정순이를 알았나요?"

할머니는 명화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명화의 육체를 뚫고 그 뒤에 서 있는 영혼을 꿰뚫어 보는 것 같았다. "그것이 네가 스스로 찾아내야 할 진짜 질문이다. 그 질문이 너를 살릴 수도, 파괴할 수도 있겠지."

할머니는 손을 뻗어 등잔불의 심지를 눌러 껐다. 방 안은 순식간에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겼다.


그 정적 속에서 명화는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정순이라는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어디선가, 아주 희미한 방울 소리가 대답했다. 낮고 높은 두 개의 음이 질문과 대답처럼 엇갈리며 울렸다. 명화는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내가 볼게. 네가 들고 있는 게 뭔지, 내가 꼭 알아낼게.

방울 소리는 사라졌고 어둠은 여전했지만, 명화는 더 이상 그 어둠이 비어 있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 다음 화 예고 — 제5화. 물가의 여자 이끌리듯 홀로 강가로 향한 명화. 그곳에서 다시 마주친 미숙 아주머니는 공포와 인식이 뒤섞인 눈으로 명화에게 속삭인다. "너, 걔를 닮았구나. 돌아오지 못한 그 애랑 똑같이 생겼어." 


[Episode 5] The Woman at the Water

The riverbank at the edge of the village was a place of heavy, stagnant air. Even in the height of summer, a thin, bone-chilling mist seemed to cling to the surface of the water, smelling of wet earth and rotting reeds. It was the same 'death-scent' that Myunghwa had first smelled on Misook, the salon woman—a cloying, metallic stench that seemed to seep into one's very skin.

Driven by a pull she couldn't resist, Myunghwa walked toward the water alone that afternoon. Grandmother Okbun's warning—"Water is a grave that never fills"—echoed in her mind, but the phantom bells in her ears were ringing with a new, insistent rhythm that forced her forward.

As she reached the muddy bank, the world went vacuum-still. The wind, which had been rattling the tall reeds, vanished in an instant. Myunghwa stood at the edge, her gaze fixed on the murky depths. She kept seeing Jeongsun’s face from her dream—those large, hollow eyes that looked inward toward a sound only the dead could hear.

Crunch.


The sound of heavy, deliberate footsteps on the dried reeds shattered the silence. Myunghwa spun around, her heart thumping against her ribs like a trapped bird. It was Misook.

The salon woman looked like a ghost of her former self. Her hair was a tangled nest, and her skin possessed the grayish pallor of someone who hadn't seen the sun in years. But it was her eyes that made Myunghwa freeze. They were vacant, yet within that emptiness, something was churning—a dark, desperate hunger that didn't belong to a living person.

"You," Misook whispered. Her voice didn't sound like it came from her throat; it was a ragged, water-logged sound, like a wet cloth being dragged across a stone floor.

Myunghwa couldn't move. The smell of the river—that suffocating fishy stench—was suddenly overwhelming, pouring out of Misook in thick, invisible waves. Misook took a step closer, her eyes locked onto Myunghwa’s face. For a fleeting moment, the vacancy in her gaze ignited with a terrifying flash of recognition.

"You look like her," Misook said, her voice barely a sound. "You look just like the one who didn't come back. The one who stayed in the dark while I walked home".

"Jeongsun?" Myunghwa’s voice came out as a tiny, fractured sliver.

At the mention of the name, Misook let out a low, guttural moan that escalated into a choked sob. She reached out with a trembling hand—the same gesture Jeongsun had made in the dream.

"She’s still there," Misook hissed, pointing toward the center of the river. "She’s waiting. She says the water is too cold. She says... she’s lonely".

Suddenly, the bells in Myunghwa’s head didn't just ring; they screamed. The single, clean note fractured into a chaotic symphony of alarm.

[ Run. Do not look back. ]

The voice was no longer a vague suggestion; it was a frigid command that vibrated in her bones. Myunghwa staggered back as Misook’s expression shifted from grief to a predatory sort of madness.


The woman’s shadow on the muddy ground seemed to stretch and distort, becoming larger and darker than the woman herself.

"Come with me," Misook whispered, lunging forward. "If I give her you... maybe she'll let him go. Maybe she'll let my husband come home".

Myunghwa turned and bolted. She ran until her lungs burned and her vision blurred, the sound of Misook’s ragged breathing and the clanging bells chasing her through the reeds. She didn't stop until she reached the safety of Grandmother's yard and collapsed under the persimmon tree.

Grandmother Okbun was already standing on the porch, her face as grim as a tombstone. She only looked at the girl's mud-stained hem and sighed.

"The water has marked you," Grandmother said quietly. "The invitation has been sent".

That night, Myunghwa sat in the dark and opened her palm. The cold was back, stronger than ever. But this time, she didn't just feel the weight; she saw it.


A tiny, silver bell, invisible to any other eye, rested in the center of her hand—a gift, or perhaps a curse, from the girl who drowned. She closed her fist around it, the metal biting into her skin.

The hunt had begun.


📌 Next Episode Preview — Episode 6: The First Ritual (Gut) The village is demanding answers. Misook has been found unconscious by the river, clutching a hanbok exactly like the one in the old photograph. Grandmother Okbun prepares the shrine room for a ritual to sever the connection, warning Myunghwa: "If the bell rings three times during the ceremony, do not answer. No matter who calls your name".


📌 본 콘텐츠는 한국 무속과 민속을 모티브로 한 창작 픽션입니다.

모든 인물·사건·배경은 허구이며, 일부 어두운 묘사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 This is a fictional creative work inspired by Korean shamanism

and folklore. All characters, events, and settings are imaginary,

and some passages may contain dark or intense imagery.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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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가장 가까운 사람이 가장 무서운 비밀을 품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명화가 마주한 정순이의 빈 손바닥은 무엇을 채워달라는 신호였을까요? 비극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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